[20부작 기획 칼럼] 11부 헌금은 투자가 아니다. - 정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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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교회 재정 운영" 교회재정건강성운동과 뉴스앤조이 20부작 기획 칼럼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투명한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자 2013년 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총 20부작 기획 교회 재정칼럼을 뉴스앤조이에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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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헌금은 투자가 아니다. - 정효섭 2013.07.19

재정 투명성 위해 헌금에 대한 기득권, 소유권 버려야 ... 동시에 적절한 제도 뒷받침 필요

 

 예전에 다니던 대형 교회에서 관리 집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루는 집사님께서 별관 어떤 방에 형광등이 다 켜져 있길래 들어가 봤더니 몇몇 권사님들이 모임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권사님들께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불필요한 조명을 꺼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여기 내는 헌금이 얼마인데, 이깟 불 좀 켜 놨다고 잔소리냐"라고 되레 핀잔을 주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개운치 못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나였더라도 누군가가 간섭한다는 게 불쾌해 그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했을 것이라는 '자체 심리 시뮬레이션' 결과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면서 교회에서 헌금을 둘러싼 욕망이 여러 가지 모양새로 방치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최근에 출석 교회에서 회계 결산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되면서, 종교 법인의 회계 처리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다. 논문을 찾다가 기독교 교리가 학문의 정교한 언어로 표현된 구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바로 종교 법인 회계에는 사적 소유에 속하는 지분(Equity)이 없다는 교회 회계의 기본 가정이었다.(1) 어떤 책에서는 종교 법인의 자원 조달은 교인들의 헌금, 기부금 등에 의해 이루어지며 자원 제공자들은 제공한 자원의 대가로서 특정한 경제적 효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며 기업회계와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했다.(2)

기업회계에서 자기자본(Equity)은 회사의 진짜 주인이 가지고 있는 자기 몫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자기자본을 갖지 않는다는 기본 가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곧 교회의 재산이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교회의 재산은 '하나님의 소유물’이라는 진리와도 맞닿아 있다. 이 개념을 더 확장시켜 보면 교회의 재산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측면을 설명해 낼 수 있다. 교회 재산이 그 누구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교회의 주권 또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될 수 없고 철저하게 하나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망각할 때가 많다.

내 손을 떠나 드려진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회 시설물을 관리하는 청지기에게 내가 쓰고 있는 교회 별관 형광등 전기세를 내가 낸 헌금으로 충당하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헌금을 얼마 냈다고 어떤 효익과 권리를 보장받고자 함은 자신이 헌금을 낸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여 교회 지분을 취득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분을 취득한 사람은 적절한 투자 수익을 보장받으려 한다. 이것은 곧 자본주의 논리이다. 교회에서는 투자 수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돈 자체를 추구하는 날것이 아닌 보다 세련되고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다. 목사님 설교 판단, 교역자 평가, 교회 내 시설물 이용, 봉사 부서 내에서의 자리다툼, 나아가 교회 내의 영향력 행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익 추구 활동은 우리 주변을 광범위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회계학자들도 알고 있는 헌금과 교회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일까? 설령 우리가 그것까지는 몰랐다고 변론할 수 있다면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위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교회 권사님들께서 관리집사님에게 그런 방식으로 핀잔을 준 이유가 단지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헌금과 교회의 참된 의미를 몰라서가 아닌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어 낸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교회에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히 십일조 전통이 강한 한국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비교적 큰 금액을 헌금하기 때문에 헌금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결정에 대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든 반대급부를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큰 용단을 낸 만큼 교회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목사님 말씀에 은혜라도 받고, 헌금을 낸 것보다 더 풍성한 물질적 축복이라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내 돈이 아깝지 않지!' 이것이야말로 교회에서 자기 지분을 찾는 그리스도인들 심연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하여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1~13, 개역개정)"

우리에겐 너무도 중요한 제물이 하나님께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유익하지도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헌금을 내면서 "소중한 것을 드리오니…"라며 한 조각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남았다면 하나님 앞에 자복하여 회개하여야 할 일이다. 자기가 낸 헌금에 대해 모종의 대가를 바라는 한국교회의 불편한 진실은 헌금을 모으는 것에 치중했던 한국교회의 어두운 이면이다. 사실 헌금을 낸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 내가 가진 것은 원래 하나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설교와 가르침도 필요하지만, 문제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범도 필요하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경우 매주 확인 도장을 찍는 기명식 헌금 봉투가 아닌 무기명 헌금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헌금 낸 사람을 주보에 싣는 일도 물론 없다. 다만 소득공제를 희망하는 성도들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기입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는 헌금이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지 누구에게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교회 방침에 따른 것이다.

교회 행사를 치를 때에도 무기명 후원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행사에 대한 후원자의 불필요한 영향력 행사를 배제할 목적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것이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성도들이 설령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헌금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다른 성도들의 헌금과 섞여 내 것을 분간할 수 없게 되고, 종국에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 드려지는 참된 봉헌 시간을 매주 경험하게 하는 것은 건강한 교회 재정의 튼튼한 초석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그와 동시에 적절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재정 관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헌금을 내는 순간부터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교회가 내부적으로 투명한 재정 관리를 추구하고 있을지라도, 그 이면에 성도들이 자기 헌금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득권과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면 재정 관리의 기초가 바르게 구축될 수 없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과 책무성은 교회 재정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효섭 / 삼정회계법인 회계사

[출처: 뉴스앤조이] 헌금은 투자가 아니다